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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전설록밴드 섹스피스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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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외적인 거친 행보로도 늘 화제를 몰고 다녔는데, 인터뷰 등에서 언제나 남에 대한 비난과 독설을 서슴지 않고 심지어 생방송에서까지 욕설을 해서 파장을 일으키고 관객들과 패싸움에 휘말리는 등 언제나 아슬아슬한 사고뭉치 악동의 이미지로 유명했다
그러나 이들의 음반이 인기차트 정상에 오르고 온갖 화제를 몰고 다니면서 펑크록은 일반대중들에게도 정형화된 하나의 음악장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훗날 주류 록 음악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그런지로 대표되는 얼터너티브 록이란 카테고리에도 펑크록은 롤모델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다

그 뒤로 미국에서 뉴욕 돌즈 매니저로 잠시 있다가 귀국한 맬컴이 밴드 매니저로 공식 영입됐는데, 보컬이었던 나이팅게일과 다른 멤버들 사이에 불화가 생겨서 새 보컬리스트를 찾게 됐다. 이 때 맬컴의 동료 버니 로즈가 (런던) 첼시의 킹스 로드에서 'I hate Pink Floyd' 티셔츠를 입고 있는 쟈니 로튼(본명 : 존 라이든)을 보고 맬컴에게 소개시켜 줬다
당대 최고의 인기 밴드였던 핑크 플로이드를 대놓고 모욕해놓은 티셔츠를 당당히 입고 돌아다니는 똘끼에 말콤 맥라렌은 이 밴드의 정체성에 딱 맞는 놈이라며 한 눈에 반해버리고 만다.
쟈니와 맬컴 앞에서 "저 빌어먹을 자식이랑은 절대 안해!"라고 했다고... 밴드 이름도 이 시기에 정해졌는데, 말콤 맥라렌이 운영하던 옷가게 이름인 'Sex'(...)와 모든것에 반항하는 의미로 'Pistol'을 붙여 맬컴이 작명했다

첫 공연은 1975년 11월부터 시작했는데, 당시 기준으로는 돼지 멱따는 보컬에 아무렇게나 갈겨대는 기타 등 존재 자체가 민폐(…)로 여겨져 클럽이나 공연장에서 쫓겨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심지어 한 공연에서는 무대 앞 첫 줄에서 밴드의 친구가 싸움에 휘말리자, 이를 돕기위해 패싸움에 뛰어들면서 대서특필되는 사건도 터진다.
하지만 몇 달 되지 않아 펑크 록 자체가 새로운 장르로 사람들에게 인식 되면서, 가장 과격하고 가장 반사회적이던 이들의 행보가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알려진다

1976년 12월에는 '빌 그런디 쇼'라는 텔레비전 토크쇼에 출연했는데, 여기서 영국 텔레비전 방송 역사상 처음으로 'Fuck'이라는 단어를 써서 엄청난 스캔들을 일으켰다
그런디 쇼가 하필 황금시간대에 방송되는 방송이었던 터라, 프로그램은 몇 주간 방송 금지를 먹고 섹피도 출연 금지 조치를 받았다.
다만 이 에피소드에도 다소 간의 비화가 있는데, 퀸이 출연할 예정이었지만 취소되는 바람에 '대신 너희들이 방송 뛰어라.'는 식으로 내던져지듯 섭외되어 멤버들 모두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치솟는 인기와 반비례하게 멤버들 간의 반목은 여전했는데, 특히 글렌 매틀록과 쟈니 로튼 간에 갈등이 심해져서 결국 글렌 메틀록이 2월에 밴드에서 탈퇴하게 된다. 근데 아이러니컬 한 점은, <Anarchy in the U.K.>, <God Save the Queen>같이 섹스 피스톨즈의 음악성을 대변하는 대표곡들은 모두 글렌 매틀록이 만든 곡들이란 점이다
즉 밴드에서 음악적으론 가장 뛰어났지만 말콤 맥라렌과 쟈니 로튼이 추구하던 반골적인 애티튜드 면에서 밴드와 잘 안 맞았던 것
록 역사가들은 글렌 매틀록 방출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보다 글렌 매틀록과 쟈니 로튼 사이에 밴드의 주도권을 놓고 벌인 파워게임에서 쟈니 로튼이 승리했기 때문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인기가 많아진 섹스 피스톨스는 여러 공연을 연속적으로 벌였는데, 이 당시 매니저였던 맬컴은 멤버들을 혹사시키는 강행군을 감행한다
1978년 1월 애틀랜타에서 첫 미국 투어를 개최했는데, 이 때 밴드는 그냥 막장이었고, 특히 시드가 마약 때문에 벌이던 병크와 영국 황색언론 기자들의 폭동 조장 등으로 인해 제대로 된 공연을 하기도 벅찼다고 한다
투어 스케줄이 저렇게 잡힌 이유는 당시 섹스 피스톨즈의 전과기록을 문제로 미국 비자가 안 나와서였다고 한다

재결성의 이유가 "돈 때문이다"였기 때문에 밴드 부활 선언 직후 그 때까지 음악 활동을 하던 주변 뮤지션들은 충격을 받아 은퇴하거나 밴드를 맹비난하는 등 갖가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온갖 여론에도 불구하고 밴드는 잘 돌아가고 있고, 2011년까지도 꾸준히 공연을 하였다.돈은 진짜 미친듯이 쌓였을 것이다
공연 직후 'Filthy Lucre Live'라는 라이브 앨범이 나왔다.

쟈니는 '음악을 하고 싶었던게 아니라 소음을 내고 혼란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밝히면서, 다른 멤버들의 음악성 때문에 결국 타협과 절충을 거친 앨범이 나왔다면서 다소 부정과 긍정이 섞인 입장 표명을 했다
가끔씩 다른 밴드의 곡을 커버하기도 했는데 정말 제멋대로 부른다
90년대 중반 홍대 주변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밴드들도 섹피와 너바나 등의 고전적인 펑크/얼터너티브 곡들을 카피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들 중 노브레인의 경우 아예 섹피의 정규 앨범 수록곡을 몽땅 커버한 트리뷰트 앨범인 'NEVERMIND THE SEX PISTOLS-HERE'S THE No BRAin'을 내놓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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