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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워싱턴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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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 등장한 최초의 대통령, 미국 최초이자 최후의 선거 군주
미국의 초대 대통령. 일명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명으로 건국 이전 영국과 치룬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이기도 하다
지금의 미국에서도 President는 연방 대통령(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과 연방 의회의 상원 임시의장(President pro tempore of the United States Senate) 두 명이 사용하는 호칭이다.

버지니아의 나름대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인 존 워싱턴(John Washington)은 영국의 설그레이브(Sulgrave)로부터 1656년 미국 버지니아로 이민하였으며, 조부인 로렌스 워싱턴(Lawrence Washington)을 거쳐 아버지인 오거스틴 워싱턴(Augustine Washinton) 대에 이르렀을 때, 담배를 주로 경작하는 큰 농장과 상당수의 노예를 보유하고 있는 버지니아의 상류 층에서 중간 급의 위치를 차지하는 가문이 되었다
워싱턴의 아버지인 오거스틴 워싱턴은 웨스트모어랜드 카운티의 판사이기도 했다

워싱턴이 11살일 때 아버지가 질병으로 사망하였으며 그의 이복 형인 로렌스가 가장이 되었다
워싱턴은 버지니아 민병대의 지휘자였던 이 이복형의 영향을 많이 받아 군인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광활한 토지에 대한 측량 업무가 중요하던 그 시절, 워싱턴도 일찍부터 측량 기술을 익혀 17살이던 1749년 정식으로 전문 측량사 업무를 개시하였으며 윌리엄 앤드 메리 대학(College of William and Mary)으로부터 측량사 자격증을 받았다

그러던 중 1754년 7년 전쟁 (Seven Years' War, 1756–63)의 전초적 전쟁이었던 프렌치 인디언 전쟁(1754–62)이 벌어지고 조지 워싱턴은 중령직위로 버지니아 의용군을 이끌고 프랑스 식민지 군대에 맞서 참전하였다
워싱턴이 그 후 독립 전쟁에서 발휘한 군 지휘관 및 정치가로서의 탁월한 능력은 이 참전을 통해 얻게 되었다
지휘관으로서의 워싱턴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앞장 서는, 타고난 지휘관이라는 믿음을 부하들에게 심어 주는 존재였다
1759년 워싱턴은 마사 커스티스(Martha Custis)라는 과부(3000명이 넘는 노예와 1만 7000에이커의 토지를 가지고 있었다)와 결혼, 당대의 미국 최대 갑부 중 한 명이 되었다
처가 전 결혼에서 출산경험이 있음에도 결혼에서 아이가 없었다. 그리고 처가 사별한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자 입양한 아들인 존 커스티스가 사망하자, 존 커스티스의 아들이자 자신의 외손자 조지 워싱턴 파크스 커스티스를 입양해서 아내의 전 남편의 후손이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조지 워싱턴 파크스 커스티스는 장성한 자녀가 딸 한 명이라서 딸과 사위에게 모든 재산이 돌아갔는데 그 사위가 바로 로버트 E

또한 당시 미국군을 지휘할만한 역량을 가진 인물은 극도로 부족했는데, 그 이유는 영국군의 보조병격이었던 식민지군 출신들은 원주민 또는 (비슷한 처지의) 프랑스 식민지군이나 상대해 본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영국군 같이 고도화된 유럽의 선진군대와 싸운바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중에 총사령관이 가능한 인물은 베네딕트 아놀드 정도
더구나 워싱턴은 미국 독립전쟁을 소모전으로 규정하여 전개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승리 후 그는 미련없이 군권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다른 사람들의 추대로 결국 미합중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만장일치로 결정된 대통령직은 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대통령으로써의 평가 또한 성공적이다
미국 법 어디에도 대통령직은 2번까지만이라는 말이 없었지만, 워싱턴이 2번만 하고 물러난 뒤로 다른 사람들도 2번 넘게 대통령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프랭클린 D
특히 조지 워싱턴은 2번의 임기 후에도 미국에서 인기가 많았고, 더군다나 당시 시대적 상황을 봐도 세계 최초의 대통령이었기에 전례도 없는 대통령직=사실상 봉건국가의 왕과 비슷한거 아닌가 하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그는 본인이 2번 넘게 집권하게 되면 왕권이 된다는 생각에 후회없이 내려왔고, 시작을 정말 잘 끊은 것이 지금 바로 미국의 민주주의와 대통령제가 문제없이 돌아가는 이유라고 볼 수도 있다. 워싱턴은 독재자가 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대통령 직에서 물러난지 2년후인 1799년 12월 14일에 사망했다
워싱턴의 공식 사인은 '무리한 과다출혈'이다
워싱턴은 눈내리는 날 무리하게 말을 타고 산책하다가 폐렴에 걸렸고, 치료를 하기 위해 무리하다고 생각될 만큼 많은 피를 뽑았다.(당시 서양에서는 그때까지도 병이 나면 무작정 피를 뽑는 '방혈치료'가 유행했다.) 결국 5파인트(약 2.35리터)나 되는 피를 뽑은 워싱턴은 폐렴에 걸린 지 3일만에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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