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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시타 도모유키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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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육군의 장군(최종 계급 대장)
그는 싱가포르 전투에서 기동전으로 대활약을 펼치며 말레이의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때 싱가포르를 함락한 이후 영국군 총사령관이였던 아서 어네스트 퍼시발 장군에게 '예스냐

야마시타와 퍼시발이 포드 공장에서 만나서 협상을 하는데 퍼시발 장군이 항복을 언급하지 않고 딴소리만 하며 시간을 끌자 인내심이 바닥난 야미시타가 책상을 쾅 치면서 '항복할 거냐 안 할 거냐' 라고 호통을 쳤고, 퍼시발이 다시 대답을 돌리자 같은 발언을 반복하며 항복하지 않으면 야간공격을 감행하겠다고 협박한 끝에 퍼시발이 항복 의사를 밝혔다는 인터뷰가 나온다.
이에 대해서 야마시타 도모유키 본인이 직접 밝힌 것이 있는데 야마시타 도모유키 생전에 이미 예스카, 노카 라는 일화가 퍼져 있었고 이에 대해서 야마시타 도모유키는 자신은 그렇게 무식하게 압박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매우 불쾌해했다고 한다
그 시점이 야마시타 도모유키가 전범으로 사형당하기 직전이었고 야마시타 도모유키는 기자들에게 퍼시발이 시간을 끌자 예스 아니면 노로 대답해줄 것을 요청하였다고 대답했다.

필리핀 방어전에서는 야마시타는 마닐라를 오픈시티로 선언하고 지연전을 위해 잔존부대를 루손 북부로 이동시키려는 전략을 수립했으나, 당시 마닐라에 남아있던 해군소장 이와부치 산지 제독과 그가 이끌던 해군 육전대 병력이 이 명령을 거부하였다. 해군 육전대는 독단적으로 시가전에 돌입하였고, 그 와중에서 수많은 필리핀인들이 살해되며 이를 마닐라 대학살이라고 부른다. 학살과 시가전으로 인해 사망한 민간인만 10만여 명 정도로 추정된다.
결국 해군 육전대는 마닐라 방어에 실패하였다
당시 마닐라에서 민간인 학살이 벌어지는 와중에 일본군은 일본 등 추축국에 우호적이었던 중립국 스페인의 영사관에 의도적으로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대검으로 찔러 죽여 50여명의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그는 츠지 마사노부가 독단적으로 결행한 싱가포르에서의 대학살과 역시 해군 육전대가 독단적으로 결행한 마닐라 대학살의 책임 전범으로 기소되었고, 유죄가 인정되어 결국 사형당했다
그가 직접적으로 학살을 저지르거나 관여한 건 아니지만, 워낙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기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자결한다 해도 다른 사람이 책임을 질 게 뻔했으므로, 연합국은 결국 그의 부하 중 누군가를 재판에 넘겨 교수대에 올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츠지 마사노부가 싱가포르 전투 당시 그 밑에서 참모로 일했다
그러나 야마시타는 마사노부에 대해 큰 일을 맡겨서는 안된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도조 히데키는 그런 평가를 무시하고 츠지 마사노부를 중용했고, 그는 그들에게 파멸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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