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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총리 호소카와 모리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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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 번의 영주였던 히고 호소카와 가문(肥後細川家)의 제18대 당주
호소카와 가문은 1633년부터 12대 238년을 구마모토 번의 영주로 지냈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후작에 봉하여졌다
호소카와 가문과 할아버지의 후광 등이 짧은 정치 경력을 충분히 메꾸고도 남았다는 평이 많다

1992년 일본신당 대표로, 93년 8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과반을 이루지 못하자 야7당 연립정권을 만들어 총리가 되었다
범인은 송혼숙(松魂熟)이라는 일본 우익단체의 회원인 52살의 노조에 마사카츠
흉기는 38구경 리볼버 권총이었으며, "호소카와 전 총리가 국회에서 태평양전쟁은 침략행위라고 한 발언과, 예산안 통과 전 사퇴한 것에 불만을 품어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후임인 하타 쓰토무 총리는 두 달 만에 사임하며 반자민당 연립은 1년도 못가 붕괴되고 만다.
"잎이 흩어짐은 때를 아는 것, 이 세상 꽃은 꽃대로 사람도 사람대로"라며 1998년 환갑과 함께 중의원을 사퇴했다
가라샤의 원 사세구는 "질 때를 알았을 때야 비로소 세상의 꽃도 꽃이요, 사람도 사람이리라(散りぬべき 時知りてこそ 世の中の 花も花なれ 人も人なれ)."

전날 일본 간토지방을 강타한 20년만의 폭설로 인한 낮은 투표율도 선거에 영향을 미쳤지만, 마스조에가 내건 복지 공약과 2020 도쿄 올림픽에 대한 어젠다가 호소카와 전 총리의 탈원전 공약보다 도쿄도민들에게 더 큰 지지를 받았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탈원전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한 우쓰노미야 겐지 후보와 단일화를 실패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또한 일본 민주당의 지원 권유를 거부했던 것도 역시 패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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